생각

나만의 계영배를 만들자

TayCleed 2011. 9. 7.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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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홍천, 횡성 지역에는 한 도공의 이야기가 전설처럼 내려오고 있다.

삼돌이라고 불리던 이 도공은 눈처럼 하얀 백자를 만드는 솜씨가 대단했다고

한다. 나중에는 그의 명성이 조정에까지 알려져셔 그가 만든 자기가 임금의

수라용 식기로 진상되었고, 그는 상으로 '우명옥'이라는 이름과 큰 상금을

하사받았다. 이후 그의 명성이 더욱 높아지자 그를 시기한 동료 도공들은

유명한 기생에게 그를 유혹해달라고 부탁했다. 명옥은 난생 처음 받아보는

아리따운 여인의 환대에 넘어가 매일 술독에 빠져 지냈고, 자기를 구워

번 돈을 몽땅 쏟아부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날 역시 기생집에서 날이 새도록 술을 퍼 마시고 집으로

돌아오던 명옥은 불어난 강물에 배가 뒤집히면서 물에 빠져 죽을 고비를

맞게 되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강물에 빠진 채 죽음의 문턱까지

다다랐다가 소식을 듣고 달려온 마을사람들 손에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명옥은 크게 깨달은 바가 있어 그날로 기생집에 발길을 끊고 머릿속에

떠오른 자기 하나를 빚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날 며칠을 고심한 끝에 그가 만든 것은 자그마한 술잔이었다.

그냥 잔이 아니라 7할 이상 술을 채우면 저절로 잔 속의 술이 사라지는

잔이었다. 왜 그런 잔을 만들었냐는 사람들의 물음에 그는 "가득 참이

모자람만 못하다는 진리를 물에 빠져 저승 입구에 다다라서야 깨달았다.

이것은 나 스스로를 경계하기 위해 만든 잔이다."라며 그 잔이 이름을

'가득 참을 경계하는 잔'이라는 의미로 '계영배(戒盈杯)'라 불렀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가득 참, 지나침을 경계하는 잔에 얽인 이야기가

이 지역에만 전해 내려오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같은 시기에 활동했던

유명한 실학자인 하백원에 관련해서도 계영배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 오고,

청나라 11대 황제이자 세기의 악녀인 서태후의 조카였던 광서제(光緖帝)도

도공들에게 명해서 계영배와 같은 형태의 잔을 만들도록 했다.

 

토요일에 우리 인생의 품격을 높여줄 4시간을 온전히 확보하고 싶다면

금요일에 지나침을 경계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나만의 '계영배"를

만들어두어야 한다. 마음속에 "이 정도 이상이 되면 그치겠다"는 기준을

정해두고 이를 지키기 위해 끈질기게 노력하려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는 흔히 주말 저녁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면 신이 나서 술과 안주를

시키며 "오늘은 진탕 퍼 마시자!"고 말하곤 한다. 그런데 '진탕'의 사전적

의미는 '싫증이 날 만큼 아주 많이'라는 뜻이다. 즉 우리는 신이 나서 저도

모르게 '싫증이 날 만큼' 과해지고 있는 것이다. 술자리는 두 시간 이상

갖지 않는다, 2차는 가지 않는다, 주량 이상이 되면 양해를 구하고 음료수로

대신한다 등의 조금은 냉정하지만 확고한 나만의 계영배가 우리의 금요일,

그리고 토요일 4시간을 보장할 것이다.

 

<토요일 4시간> 신인철 지음, 리더스북, p.153-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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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그래도 주말마다 약속이 없는 날이면 퍼질러 자거나 딱히 쓸데 없는 일로 시간을 보내는 일이 많아서,
친구들 몇몇과 브런치 모임이라도 만들어볼까 하는 중이었는데 꽤나 좋은 글을 만났다.

그렇다, 금요일, 토요일 밤 늦게까지 놀다보면 그 다음날은 지쳐 쓰러져 자다가 해가 중천에 떴을 때, 혹은 중천을 넘어 뉘엇뉘엇 넘어갈 때 쯤에서야 일어나게 된다. 그러면 뭐, 또 하루가 지나가버렸다.

'지나침이 모자람만 못하다'는 게 이런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