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TayCleed

카테고리

전체 (109)
일상 (11)
영화 (9)
음악 (7)
(8)
게임 (11)
IT (8)
기타 (5)
학습 (22)
생각 (24)
Total134,925
Today0
Yesterday26

어떤 축구선수 A가 있다고 하자. 이 선수는 좀 악질이다. 반칙도 자주하고 경기 중에 주먹질을 한 사례도 있다. 이 선수의 주먹질, 발길질에 선수 인생 그만 둔 선수도 있을 정도다. 참 나쁜 놈이다.

그럼 이 놈만 조지면 되나?

나는 이 선수 A도 나쁘고 처벌해야한다고 보지만, 이 선수의 행동을 제지하지 않는 심판, 제지할 능력이 안되는 심판도 문제라고 본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서 이 심판은 정부다. 환경부처가 판매 허가를 내주니까. 근데 언론은 '옥시'에만 포커스를 맞추지 그때 허가해준 정부 담당자는 누구인지, 시스템이 어땠길래 이게 허가가 되었는지는 보도하지 않는 것 같다.

이번 문제의 포커스는 허가당국에 맞춰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가습기 살균제' 문제뿐만이 아니라, '자동차 급발진 사고' 등의 문제에 정부가 주도적으로 참여하도록 변화시킬 수 있다.

Posted by TayCleed

댓글을 달아 주세요

기사가 하나 떴다. 


샌프란시스코, 신축건물에 태양광 패널 의무화…미국 최초

http://news.kbs.co.kr/news/view.do?ncd=3268696


저번엔 테슬라 발표에서 엘론 머스크가 그거 뭐 미국 땅 넓이 차지 얼마 하지 않는다고 했었던 적도 있다. 

찾아보니 이런 자료가 나온다. 


We would need only 10 million acres of land—or only 0.4% of the area of the United States—to supply all of our nation’s electricity using PV.

http://www.nrel.gov/docs/fy04osti/35097.pdf 


미국 땅의 0.4%만 태양광 패널에 할애하면 미국 전체 전기 사용량을 충족시킬 수 있다는 미국 정부 기관의 자료. 



1. 그럼 우리나라는? 


위키(https://en.wikipedia.org/wiki/List_of_countries_by_electricity_consumption )에 따르면 우리나라 연간 전기 사용량은 미국의 10분의 1 정도이다. 미국이 10 million acre 필요하다고 하니 우리나라는 딱 1 million acre로 하자. 이게 얼마냐면 4165.68 km^2 정도이다. 대한민국 면적의 약 4%이고, 대도시인 서울, 부산, 인천, 대구, 광주, 대전을 합친 것에 조금 못 미치는 정도이다. 


면적으로 따지면 우리나라도 충분히 태양광 패널만으로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2. 저 자료 오래된 것 같은데


2004년 자료인데 그때에 비해 지금 미국의 전기 사용량은 18% 정도 늘어났다. 

(https://en.wikipedia.org/wiki/Energy_in_the_United_States#Current_consumption 와, 위 1번의 링크 비교) 


근데 위 2004년 자료에서 가정한 PV의 효율이 15%. 

전기 사용량이 18% 늘어난 점을 감안해서... 대충 20% 늘어났다고 잡아도 PV 효율은 15%에서 18%로 3%만 오르면 땅 넓이는 똑같아도 된다.


근데 그 10년 넘는 세월 동안 효율이 3%만 올랐을까. 


http://www.nrel.gov/ncpv/images/efficiency_chart.jpg  


위 자료 만들었던 기관의 최신 자료. 

태양광 패널 만드는 부품별 에너지 변환 효율을 보여주고 있다. 

LG전자의 부품이 27.5%가 나온다. 18%도 충분한데 27.5%. 

일본 Sharp의 경우 37.9%라고 되어있다. 


효율이 2배 좋으면 대한민국 영토 4%가 아니라 2%만 써도 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3. 그래서


당장 모든 건물의 지붕에 태양광 패널 설치를 강제할 수는 없겠지만, 우리도 샌프란시스코처럼 신축 건물에는 강제할 수 있지 않을까. 









Posted by TayCleed

댓글을 달아 주세요

서부원정지와 4.3

생각 / 2014. 4. 8. 00:09

  게임 <디아블로3>의 확장팩 '영혼을 거두는 자'에서는 '서부원정지'라는 지역이 시작지역으로 등장한다. 말티엘에 의해 무수히 많은 무고한 생명이 목숨을 빼앗기는 곳이다. 이곳 시나리오를 진행하다보니까, 제주 4.3과 닮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 


  원작 <디아블로3>에서 아드리아의 계략에 의해 지옥의 7대악마가 검은영혼석에 한데 모아지게 되고, 레아의 몸을 빌려 디아블로라는 대악마로 합쳐져 환생한다. 디아블로에 의해 천상은 파괴되고 끝을 모르던 천사와 악마의 전쟁은 종말을 맞이하는 듯 했으나, 네팔렘의 후예인 주인공의 활약으로 디아블로는 처치되고 악마들은 다시 한 번 패배한다. 

  천상에는 대천사 다섯으로 이루어진 '앙기리스 의회'라는 조직이 있는데, 천상의 가장 높은 조직인듯 하다. 이 중 '정의'를 맡고 있던 대천사 티리엘이 전작 <디아블로2>에서 세계석을 파괴한 죄로 천상에서 쫓겨나 성역으로 떨어지면서 <디아블로3>가 시작된다. 7대 악마 중 하나인 바알에 의해 세계석이 악마들의 공간인 지옥과 인간들의 공간인 성역을 연결하는 문이 되어버린 것이 티리엘이 세계석을 파괴한 이유였다. 앙기리스 의회는 '정의' 이외에도 용기, 희망, 운명, 지혜를 각각 관장하는 대천사들이 있는데, 이 중 지혜를 관장하는 대천사가 바로 위의 말티엘이다. 

  <디아블로3>에서 주인공이 대악마를 처치하며 평화가 찾아오는듯 했지만, 말티엘이 무시무시한 생각을 하며 성역엔 큰일이 닥쳤다. 디아블로의 세계관에서 인간은 천사와 악마 사이에서 태어난 네팔렘의 후예이다. 즉, 인간의 영혼은 천사의 일부, 악마의 일부를 포함한다. 그런데 말티엘이, 대악마가 사라진 지금이야말로 끝이 없던 전쟁을 영원히 종결시켜버린 기회라고 생각해서 악마는 물론이고 악마의 일부를 포함하는 성역의 인간들까지 모조리 없애버리려 한 것이다. 

  말티엘은 서부원정지에 '영혼 도가니'라는 무시무시한 장치를 설치하여 왕국의 수많은 생명을 앗아간다. 육신에서 영혼만 낚아채어가는 장치이다. 서부원정지 도시 골목마다 영혼이 빠져나간 육신들이 나뒹굴고, 말티엘의 명을 따르는 죽음의 사자들이 쉴새없이 돌아다니며 생명을 색출해낸다. 도가니가 위치한 장소로부터 가까운 10km 정도는 영향권에 있는 것 같이 연출된다. 


  평화를 말하며 무수히 많은 생명을 빼앗는, 이 '연출된' 장면에서 단지 '그럴 수 있다'라는 추정으로 무수히 많은 생명이 희생된 4.3 사건을 떠올리는 건 어찌보면 쉬운 일 아닌가? 천사와 악마로 양분하나, 극우와 종북으로 양분하나, 중간에 끼인 많은 사람들은 고통받을 뿐인 것 같다. 




ps. 글 쓰기 전에 4.3 사건을 찾아보고 4.3 사건의 배경과 발단, 경과, 결말에 대해 더 자세히 알게 되었다. 일 터뜨려놓고 자기는 쏙 빠지는 비열한 인간이 여기에도 있었구나... 

Posted by TayCleed

댓글을 달아 주세요


다음과 같은 기사를 보았다. 

韓 제조업경쟁력 3→5→6위…3년 연속 하락



기사 링크: http://media.daum.net/economic/world/newsview?newsid=20121118181404378



 진짜일까? 하락했다면 뭐 어떻게 하락했다는 걸까? 순위를 매긴 방법은? 


 궁금해져서 찾아봤다. 아래 링크는 기사에 나오는 '딜로이트'라는 회사의 올해 보고서 페이지이다. DOWNLOAD를 누르면 보고서를 받을 수 있다. 


http://www.deloitte.com/view/en_GX/global/industries/manufacturing/3e4898b27c50b310VgnVCM3000003456f70aRCRD.htm?id=gx_theme_GCMfg#



 Table 1 및 2에서 전 세계 CEO들에게 물어본 각 국가별 제조업 경쟁력 순위를 보여주고 있다. 무슨 자료를 기반으로 한 게 아니라 CEO들한테 Survey한 걸로 보인다. 현재의 경쟁력과 5년 뒤의 경쟁력을 물어본 게 Table 1인데, 위의 그림과 같다. 무슨 일인지 기사가 잘못 난 것 같다. 


 Figure 1(p.4)에서 각 국가별 경쟁력에 관계된 데이터를 보여주고 있다. 왼쪽부터 임금($/시간), 노동 생산성, 세금 비율, 인구 1백만 명 당 연구원 수, 그리고 '05~'10 제조업 GDP 평균 증가율, 2010 GDP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율, 2011 수출 중 제조업 수출 비율, 혁신지수(100점 만점), 삶의 질(100점 만점), '01~'10 간 제조업이 만든 인구 100명 당 일자리 수이다. 


 한국은 인도, 중국, 대만, 브라질 다음으로 임금이 낮으면서, 중국보다도 낮은 세율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인구 1백만 명 당 연구원 수는 일본, 싱가폴 다음가는 3위이면서, 노동 생산성은 일본, 독일을 누르고 5위를 차지했다. 한국의 제조업은 지난 5년 간 평균 6% 성장했고, 한국 GDP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율은 중국 다음가는 30% 수준, 한국의 수출액 중 제조업은 85.3%로 높은 수준을 보이고 있다. 혁신지수는 일본을 앞서 53.9를 보이고 있으면서, 삶의 질은 일본 독일에 못미치고 캐나다에 근접한 71이다. 지난 10년 간 인구 100명 당 일자리 생성은 -4.5명으로 꼴지를 기록했다. 

 종합하자면 더 적은 연구원 수, 더 적은 임금, 더 적은 세율에도 불구하고 더 높은 노동생산성으로 일정한 삶의 질의 포기와 함께 지속적인 혁신, 제조업의 GDP 증가를 이루었지만 한국의 제조업은 오히려 노동자를 사업장에서 쫓아냈다. 아니면 일부 기업들이 아예 무너졌거나. 


보고서에서 550명의 CEO들에게 Survey용 질문으로 던진 건 아래 10개란다. (p.7)

  1. 재능을 바탕으로 한 혁신
  2. 경제, 무역, 금융, 조세 제도
  3. 노동력/재료에 대한 접근성 및 비용
  4. 공급망
  5. 법 제도
  6. 물리적 인프라
  7. 에너지 비용 및 제도
  8. 현지 시장의 매력도
  9. 보건 제도
  10. 제조업 및 혁신에 대한 정부 투자


 물론, 보고서는 550명에게 각 질문에 대해 38개국을 모두 순위 매기는 건 너무 힘든 일이었기에, 미국, 일본, 독일, 브라질, 중국, 인도 딱 6개국만 순위 매기는 걸로 했다는 중요한 사실도 적어놓았다. 안 그래도 바쁘신 CEO들인데. 


 그 결과는 Table 4(p.8)에서 간략히 볼 수 있는데, 선진국의 위엄을 보여주는 미, 일, 독과 저임금으로 때우는 인도, 브라질은 그렇다치고, '세계의 공장' 소리듣던 중국이 공장은 물론이고 시장으로서의 위엄도 갖춰나가고 있는 걸 볼 수 있다. 공급망과 현지 시장 매력도 항목을 보라. 제조업 혁신에 대한 중국 정부의 투자 점수도 높기에, 조세 제도는 계속 유리하게 유지될 거고, 인프라, 에너지 점수 또한 곧 높아질 거라고 기대할 수 있다.


 내 생각에 우리나라 순위가 밀린 건, 단순히 말하면 이 '현지 시장성' 때문이 아닌가 싶다. 기술력이 딸리는 것도 아니고, 조세 제도가 후진 것도 아니다. 공급망이 안 좋나 뭐가 안 좋나? 물론 임금 수치는 2.8 $/시간인 중국에 비하면 17.7 $/시간은 높은 거지만. 


 여기서부터는 각 항목별로 나오는 차트들을 중심으로 이야기할 건데, 무시해도 그만. 
개개인의 입장에서 할 수 있는 건 죄다 잘 하고 있는 걸로 보이니까. ;; 




Posted by TayCleed

댓글을 달아 주세요




2012.03.30 1914

낙관론자가 세상을 변화시킨다.

비관론자는 대체로 옳고 낙관론자는 대체로 그르다.
그러나 대부분의 위대한 변화는 낙관론자가 이룬다.
(Pessimists are usually right and optimists are usually wrong 
but all the great changes have been accomplished by optimists.)
-토머스 프리드먼(Thomas Loren Friedman)

촌철활인

정답을 맞히는 게임이라면 비관론자가 되는 것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은 정답을 맞히는 게임이 아닌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게임에 의해 발전해 나갑니다.
창조의 게임에서는 실패와 오류 가능성이 크다 하더라도 
낙관론적 입장을 견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To get the right answer in a game, it is okay to be a pessimist. 
However, this world is evolving not only in the game 
where right ans wers are necessary but in a game 
where there is a need to create new things. 
In the game of creation, we need to maintain an optimistic 
perspective even though there is a big chance of failure. 



Posted by TayCleed

댓글을 달아 주세요

불가능이란 없다는 사실을 믿어야 불가능이 없다.

젊은 연구원들에게 매우 힘든 과제를 주면서
도서관의 책은 절대 참고하지 못하게 했다.
이 과제는 불가능하다는 연구결과가 비치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이 사실을 모른 한 젊은 연구원이 얼마 후
절망적인 기존 보고서를 뒤집고 그 과제를 해결했다.
실패 가능성을 완전히 무시하는 것이야말로
어떤 일을 할 때 성공에 이르는 지름길이다.
-찰스 캐터링(미국의 유명 과학자겸 발명가)

만일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미리 알았더라면
연구에 착수하기도 전에 자신감을 상실해 버렸을 것입니다.
수많은 일이 실제 불가능하기 보다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소극적인 사고방식 때문에 불가능해집니다.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야말로 성공의 원천입니다.
우주의 중심에 ‘출입금지 푯말’ 따위는 없습니다.
(오마에 겐이치, ‘쾌도난마’에서 인용)


나는 개인적으로, 나 자신이 '불가능이란 없다'고 생각하고 행동할 때가 있다.  

사실 직접적으로 '불가능이란 없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이게 실패하더라도 얼마든지 나는 다른 길이 있다.'라고 생각하는 때이다.
결국 핵심은 실패의 두렴움을 제거하는 것이고,
무한의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이를 실천할 수 있다.. 

실제로 무한의 기회를 제공하지 않더라도, 조직에서는 구성원에게 그런 신뢰를 줌으로써 똑같은 효과를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그런데 아마 '실패의 두려움'을 완전히 제거해버리면 어떻게 일을 제대로 할까,
그냥 대충해서 실패해도 지불할 비용이 없다면 일을 제대로 하기는 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래서 일을 해나가는데 있어 책임을 묻는 것보다 자율와 창의를 강조하고, 일에서의 재미, 자아실현 등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 

Posted by TayCleed

댓글을 달아 주세요


이번 talk의 연사인 Jacek Utko은 신문을 새롭게 디자인하여, 독자들로 하여금 전혀 새로운 경험을 얻을 수 있도록 합니다.

그리고 그를 통해 신문사도 다시금 일어서게 만듭니다.

그렇게 만들게 된 계기는 전혀 다른 분야인 '태양의 서커스'를 보고나서라고 하네요.

그리고 그렇게 하기 위해 process 자체를 새롭게 만들어 냈습니다.

 

전혀 새로운 분야에서 영감을 얻은 것,

그리고 단순히 신문의 디자인만을 바꾼 것이 아니라 새로운 process를 만들어냈다는 것이 인상적으로 다가왔습니다.

디자인이란 어디에나 있으며, 새로운 process까지 만들어내는 것이  디자인의 힘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ㅎ

디자인에 대한 짧은 이야기, 재미있게  보세요.^^
 

<Jacek Utko designs to save newspapers>



'전혀 새로운 분야에서 영감을 얻는 것'은 내 취미이다. 
그것은 깨달음의 시작이고, 남의 능력을 내 것으로 만드는 길이다. 

두 교훈이 기억에 남는다. 

"Give power to designers!"
"... To be good is not enough."


Posted by TayCleed

댓글을 달아 주세요

20여 년간 성공한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 한 결과,
성공한 사람들은 모두 약점의 지배에서 벗어나
강점을 재발견 하는 데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았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의 단점을 고치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20% 정도 사용하고,
나머지 80%는 장점을 강화하는데 사용한다고 말한다.
-마커스 버킹엄(Marcus Buckingham), ‘위대한 나의 발견 강점혁명’에서



그렇습니다. 성과는 약점 보완에서가 아닌, 강점 강화에서 나옵니다. 

약점의 발견과 해결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거의 실수였다는 사실을 많은 연구결과가 입증해주고 있습니다.

벤저민 프랭클린의 다음과 같은 지적도 깊이 음미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인생의 진정한 비극은
우리가 충분한 강점을 갖고 있지 않다는데 있지 않고,
오히려 갖고 있는 강점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는데 있다.”  



음. 나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내 외모의 약점이라고 생각하는 수염 제거에 쏟았나 ...

내 장점을 찾고 그걸 강화시킬 생각을 해봐야겠군...//ㅅ//



Posted by TayCleed

댓글을 달아 주세요

============================================================

강원도 홍천, 횡성 지역에는 한 도공의 이야기가 전설처럼 내려오고 있다.

삼돌이라고 불리던 이 도공은 눈처럼 하얀 백자를 만드는 솜씨가 대단했다고

한다. 나중에는 그의 명성이 조정에까지 알려져셔 그가 만든 자기가 임금의

수라용 식기로 진상되었고, 그는 상으로 '우명옥'이라는 이름과 큰 상금을

하사받았다. 이후 그의 명성이 더욱 높아지자 그를 시기한 동료 도공들은

유명한 기생에게 그를 유혹해달라고 부탁했다. 명옥은 난생 처음 받아보는

아리따운 여인의 환대에 넘어가 매일 술독에 빠져 지냈고, 자기를 구워

번 돈을 몽땅 쏟아부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날 역시 기생집에서 날이 새도록 술을 퍼 마시고 집으로

돌아오던 명옥은 불어난 강물에 배가 뒤집히면서 물에 빠져 죽을 고비를

맞게 되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강물에 빠진 채 죽음의 문턱까지

다다랐다가 소식을 듣고 달려온 마을사람들 손에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명옥은 크게 깨달은 바가 있어 그날로 기생집에 발길을 끊고 머릿속에

떠오른 자기 하나를 빚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날 며칠을 고심한 끝에 그가 만든 것은 자그마한 술잔이었다.

그냥 잔이 아니라 7할 이상 술을 채우면 저절로 잔 속의 술이 사라지는

잔이었다. 왜 그런 잔을 만들었냐는 사람들의 물음에 그는 "가득 참이

모자람만 못하다는 진리를 물에 빠져 저승 입구에 다다라서야 깨달았다.

이것은 나 스스로를 경계하기 위해 만든 잔이다."라며 그 잔이 이름을

'가득 참을 경계하는 잔'이라는 의미로 '계영배(戒盈杯)'라 불렀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가득 참, 지나침을 경계하는 잔에 얽인 이야기가

이 지역에만 전해 내려오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같은 시기에 활동했던

유명한 실학자인 하백원에 관련해서도 계영배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 오고,

청나라 11대 황제이자 세기의 악녀인 서태후의 조카였던 광서제(光緖帝)도

도공들에게 명해서 계영배와 같은 형태의 잔을 만들도록 했다.

 

토요일에 우리 인생의 품격을 높여줄 4시간을 온전히 확보하고 싶다면

금요일에 지나침을 경계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나만의 '계영배"를

만들어두어야 한다. 마음속에 "이 정도 이상이 되면 그치겠다"는 기준을

정해두고 이를 지키기 위해 끈질기게 노력하려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는 흔히 주말 저녁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면 신이 나서 술과 안주를

시키며 "오늘은 진탕 퍼 마시자!"고 말하곤 한다. 그런데 '진탕'의 사전적

의미는 '싫증이 날 만큼 아주 많이'라는 뜻이다. 즉 우리는 신이 나서 저도

모르게 '싫증이 날 만큼' 과해지고 있는 것이다. 술자리는 두 시간 이상

갖지 않는다, 2차는 가지 않는다, 주량 이상이 되면 양해를 구하고 음료수로

대신한다 등의 조금은 냉정하지만 확고한 나만의 계영배가 우리의 금요일,

그리고 토요일 4시간을 보장할 것이다.

 

<토요일 4시간> 신인철 지음, 리더스북, p.153-156.

 

============================================================

안 그래도 주말마다 약속이 없는 날이면 퍼질러 자거나 딱히 쓸데 없는 일로 시간을 보내는 일이 많아서,
친구들 몇몇과 브런치 모임이라도 만들어볼까 하는 중이었는데 꽤나 좋은 글을 만났다.

그렇다, 금요일, 토요일 밤 늦게까지 놀다보면 그 다음날은 지쳐 쓰러져 자다가 해가 중천에 떴을 때, 혹은 중천을 넘어 뉘엇뉘엇 넘어갈 때 쯤에서야 일어나게 된다. 그러면 뭐, 또 하루가 지나가버렸다.

'지나침이 모자람만 못하다'는 게 이런 것 아닐까? 
 
 

Posted by TayCleed

댓글을 달아 주세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성공하려면 노력해야한다 합니다. 젊을 때 고생은 사서 한다는 말도 있고요. 

 그런데 어제는 웹에서 이런 문장을 읽었습니다. 
시련은 큰 그릇은 더욱 강하게 하지만 대부분의 작은 그릇은 찌그러뜨려 버린답니다.
 과연, 귀가 솔깃합니다. ( 다행히도 위 문장의 그릇은 사기 그릇은 아닌가보네요. 사기 그릇이었다면 깨져버렸을 텐데... )

 살다보면 이렇게 서로 맞지 않는 의견을 만나게 됩니다. 이쪽도 맞고 저쪽도 맞는 것 같은데, 어디를 따라야하죠? 황희 정승은 '네 말도 맞고, 네 말도 맞다'라고 하면서 어떻게 결정하셨을까요? 흠...

 이렇게 양쪽에 무언가를 두고 고민을 할 때면 '적당히'라는 말이 떠오르며 역시 '중도(中道)'를 걸어야하나란 생각도 듭니다. 이쪽도 아니고 저쪽도 아닌 어물쩡한 상태, 어디에도 크게 치우치지 않은 기회주의적인 상태. 

 이렇게 많은 길을 앞에 늘어두고, 결국에는 저 혼자 남겨질 뿐입니다. 이 길이 나을 지, 저 길이 나을 지, 언저리에서 서성거리며, 대갈통을 굴려보지만 쉽게 답이 나오지는 않습니다. 이런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저로서도 제 자신이 답답한 지경입니다. 그러다 어느 길이든 고르게 되고, 길을 알려줬던 이도 고민하는 저를 기다리다 지쳐 사라졌는데, 길을 걸어갑니다. 더 좋은 곳에 다다르고 싶었을 뿐인데, 이 길이 맞는 지 믿지도 못하면서. 

 이런 것을 '믿음이 부족하다'고 하나요? 저는 종교가 없으니 뭐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Posted by TayCleed

댓글을 달아 주세요

최근에 달린 댓글

최근에 받은 트랙백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