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서부원정지와 4.3

TayCleed 2014. 4. 8. 00:09

  게임 <디아블로3>의 확장팩 '영혼을 거두는 자'에서는 '서부원정지'라는 지역이 시작지역으로 등장한다. 말티엘에 의해 무수히 많은 무고한 생명이 목숨을 빼앗기는 곳이다. 이곳 시나리오를 진행하다보니까, 제주 4.3과 닮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 


  원작 <디아블로3>에서 아드리아의 계략에 의해 지옥의 7대악마가 검은영혼석에 한데 모아지게 되고, 레아의 몸을 빌려 디아블로라는 대악마로 합쳐져 환생한다. 디아블로에 의해 천상은 파괴되고 끝을 모르던 천사와 악마의 전쟁은 종말을 맞이하는 듯 했으나, 네팔렘의 후예인 주인공의 활약으로 디아블로는 처치되고 악마들은 다시 한 번 패배한다. 

  천상에는 대천사 다섯으로 이루어진 '앙기리스 의회'라는 조직이 있는데, 천상의 가장 높은 조직인듯 하다. 이 중 '정의'를 맡고 있던 대천사 티리엘이 전작 <디아블로2>에서 세계석을 파괴한 죄로 천상에서 쫓겨나 성역으로 떨어지면서 <디아블로3>가 시작된다. 7대 악마 중 하나인 바알에 의해 세계석이 악마들의 공간인 지옥과 인간들의 공간인 성역을 연결하는 문이 되어버린 것이 티리엘이 세계석을 파괴한 이유였다. 앙기리스 의회는 '정의' 이외에도 용기, 희망, 운명, 지혜를 각각 관장하는 대천사들이 있는데, 이 중 지혜를 관장하는 대천사가 바로 위의 말티엘이다. 

  <디아블로3>에서 주인공이 대악마를 처치하며 평화가 찾아오는듯 했지만, 말티엘이 무시무시한 생각을 하며 성역엔 큰일이 닥쳤다. 디아블로의 세계관에서 인간은 천사와 악마 사이에서 태어난 네팔렘의 후예이다. 즉, 인간의 영혼은 천사의 일부, 악마의 일부를 포함한다. 그런데 말티엘이, 대악마가 사라진 지금이야말로 끝이 없던 전쟁을 영원히 종결시켜버린 기회라고 생각해서 악마는 물론이고 악마의 일부를 포함하는 성역의 인간들까지 모조리 없애버리려 한 것이다. 

  말티엘은 서부원정지에 '영혼 도가니'라는 무시무시한 장치를 설치하여 왕국의 수많은 생명을 앗아간다. 육신에서 영혼만 낚아채어가는 장치이다. 서부원정지 도시 골목마다 영혼이 빠져나간 육신들이 나뒹굴고, 말티엘의 명을 따르는 죽음의 사자들이 쉴새없이 돌아다니며 생명을 색출해낸다. 도가니가 위치한 장소로부터 가까운 10km 정도는 영향권에 있는 것 같이 연출된다. 


  평화를 말하며 무수히 많은 생명을 빼앗는, 이 '연출된' 장면에서 단지 '그럴 수 있다'라는 추정으로 무수히 많은 생명이 희생된 4.3 사건을 떠올리는 건 어찌보면 쉬운 일 아닌가? 천사와 악마로 양분하나, 극우와 종북으로 양분하나, 중간에 끼인 많은 사람들은 고통받을 뿐인 것 같다. 




ps. 글 쓰기 전에 4.3 사건을 찾아보고 4.3 사건의 배경과 발단, 경과, 결말에 대해 더 자세히 알게 되었다. 일 터뜨려놓고 자기는 쏙 빠지는 비열한 인간이 여기에도 있었구나...